"세상은 넓고, 돌아이는 많다."
초콜렛, 원두커피, 바나나, 호박, 살구, 코코넛, 메밀, 치커리, 딸기, 쑥, 버섯, 오크칩, 오렌지, 바닐라..... 네, 모두 맥주에 들어가는 재료들입니다. 동네마다 하나씩 있다는 크래프트 브루어리를 중심으로 맥주의 기본 재료인 물, 몰트, 홉, 효모 외에 다양한 부재료들이 끊임 없이 시도되고 있는 요즘 웬만한 재료로는 놀랍지도 않지요. 이들 재료의 공통점은? 그렇습니다. 동/식물 둘 중에 하나로 분류해 보라면 주저 없이 식물쪽으로 분류할 재료들 되시겠습니다. 하지만 맥주에 고기를 넣는다면 어떨까요? 그것도 훈연한 베이컨을 말입니다.
근래에 만난 맥주 중 가장 문제작, 부두 도넛 베이컨 메이플 에일입니다.
Voodoo Doughnut Bacon Maple Ale
Rogue Brewery
ABV : 5.6%
Style : 고기 육수 Beer;;;;;;;

재료를 살펴보겠습니다.
- 몰트 : 체리우드 훈연 몰트, 비치우드 훈연 몰트, 히코리 훈연 몰트, 투 로우 베이스 몰트, 뮤닉 몰트, 크리스탈 75
- 부재료 : 애플우드 훈연 베이컨;;;;;;;, 메이플 플레이버
- 홉과 효모 설명은 생략(이게 중요한게 아님)
훈제맛으로 떡칠을 해 놓은 레시피입니다. 세 종류의 훈연 몰트에 레알 훈연 베이컨까지....;; 전에 이 재료구성을 봤을 때 혀에 꼬리꼬리한 훈연 맛이 감돌면서 바로 모니터를 후려칠 뻔 했다능... ㅡㅡ;;
음.... 이 맥주 맨 처음 아이디어 낸 사람~~~~ 내일까지 부모님 모셔와. 똘짓에는 매가 약임.

외형은 훈연 맥주에 걸맞는 진한 갈색과 함께 누런 아이보리 색의 헤드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색이 꽤 진하고 탁도가 있어 반대편이 투과되지 않는 듯 했고, 헤드 리텐션은 보통이었습니다.
아로마는 훈연향이 압도할 줄 알았던 예상과는 달리 메이플의 달달한 향기가 지배적이었습니다. 메이플 시럽에서 나는 특유의 달달한 향기를 시작으로 토피캔디와 같은 끈적이는 설탕 내음, 초등학교 시절에 먹던 불량식품스런 카라멜 내음이 존재했습니다. 강한 훈연향을 기대했으나 훈연향은 가장 마지막에 미미하게 존재했습니다. 오히려 정향(clove) 아로마가 훈연향 보다 우세하네요.
부담스러울까봐 살짝 한 모금을 입 안에 흘려 넣어 보았습니다. 맛 역시 훈연맛이 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향(clove) 쥬스라고 해도 될 정도로 화~~한 치과 마취약 맛이 혀 안에 맴돌더군요. 자사 맥주의 재료를 늘 공개하는 로그의 특성상 정향을 넣었으면 홈페이지에 'clove'라고 명시가 되어 있을 텐데 전혀 표기가 없어 의아했습니다. 내가 맛을 잘못 본 건가...;;;;;

정향에 대한 설명 잠깐.....
정향(丁香). 영어로는 Clove. 꼭 못 같이 생겼죠? 못(丁)같이 생긴 향신료(香)라고 해서 정향(丁香)이라고 부릅니다. 향신료 중에 향과 맛이 꽤 강력한 것이라고 하는군요. 밀맥주나 벨기에 계열의 에일에서 정향이 느껴진다느니 클로브의 존재가 뒤 끝에 살짝 남는다느니 페놀이 느껴진다느니 하는 말을 하는데 그 때의 그 정향 맞습니다. 정향 냄새와 맛을 느껴보지 못한 분들께 딱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치과 소독약 맛과 냄새'라고 설명드리고 싶네요. 맥주에 실제로 넣는 경우도 있고, 효모가 뿜어내는 에스테르(부케)일 경우도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실제 정향을 넣지 않고도 효모가 이러한 페놀릭한 정향의 캐릭터를 만들어 낼 수가 있는데 로그 양조장은 'Pac Man'이라는 로그 고유의 범용 에일 효모를 사용하기 때문에 팩맨 효모가 정향 부케를 뿜어낸다면 로그의 다른 맥주에서도 느낄 수 있어야 하는게 맞습니다. 하지만 초콜렛 스타우트나, 헤이즐넛 넥타 등 국내에 들어와 있는 로그 맥주 중에서 정향의 존재를 느껴본 적은 없으므로 효모의 특징이라고는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혹시 아래 사진과 같이 처리된 베이컨을 투입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고기의 누린내를 없애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송곳으로 고기 표면에 구멍을 여러군데 뚫고 정향을 찔러 넣는 거죠. 이런 방법을 통해 고기의 잡내는 제거되고, 정향 특유의 자극적인 맛이 고기에 밴다고 하는군요. 정향을 다량으로 찔러 넣은 베이컨을 썼던지, 아니면 제 혀가 바보던지 둘 중에 하나인 상황. -_-;;
마냥 클로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메이플과 버터 카라멜이 뒤섞인 달달함과 적당한 비터도 존재합니다. 아로마와 마찬가지로 스모키한 맛은 매우 약하게 남네요.
보통보다 조금 높은 탄산 수준과 미디엄 바디를 갖고 있었고, 삼키고 난 후에는 여전히 강력하게 이어지는 정향의 향과 함께 설탕시럽같은 달달함, 약하지만 살짝 매캐한 훈연향이 피니시로 남습니다.
다시 한 번 외쳐봅니다. "세상은 넓고, 돌아이는 많다."
다시 한 번 외쳐봅니다. "세상은 넓고, 돌아이는 많다."
로그 양조장 웹페이지
부두 도넛 베이컨 메이플 에일 웹 페이지
※ 전반적인 인상
전반적으로 정향(clove) 맛이 우세한 가운데 살짝 살짝 메이플과 카라멜이 느껴집니다. 예상 외로 스모키한 훈제맛은 강하지 않았습니다. 변태 홈브루어들이 만든 훈연 맥주를 몇 번 맛봐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요 정도 맛으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가네요. ㅎㅎㅎㅎㅎ 경험 삼아 마셔보는 것은 환영하나 자주 찾게될 것 같지는 않네요(국내에서 팔지도 않지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재료의 한계를 두지 않고 파격을 생활화하는 그들의 정신에 박수를 보냅니다....만, 이거 만들자고 아이디어 낸 놈 부모님 모셔와....
<질문 하나>
맥주에 베이컨을 넣았다고 했을 때 제일 궁금했던게 '기름을 어떻게 처리했을까?'입니다. 더군다가 그냥 고기도 아니고 돼지, 그것도 비계가 많은 베이컨이라니... 제품 병입 전에 숙성조에 있는 맥주에서 기름 걷어내느라 고생 좀 했겠다 생각했지만 베이컨 지방을 따로 빼내는 방법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베이컨을 수건에 감싸서 냉동실에 넣고 자주 수건을 교체해 주면 기름이 빠진다는데 전 좀 이해가 안 가네요..;;;;; 자세히 아시는 분 있으신가요?
덧글
저온에서 자주 흡수지를 갈아주면 어느정도 가능할것 같네요
실제로 소고기를 드라이 에이징 하면 수분이 날라가고 육질이 단단해지니…(아님 육포처럼 건조법도 같이 이용했을지 모릅니다 ㅎㅎ)
북한에는 물개 거시기로 만든 술도 있져
누군가의 얘기처럼 맥주가 와인보다 넓은 세계를 구축하고 있군요. ㅎㅎ